빈곤의 이유, 가난한 사람들은 왜 가난할까?

빈곤

빈곤은 원인이 전혀 없다. 번영만이 원인이 있다

– 제인 제이콥스 –

가난한 사람들은 왜 가난할까?

          질문이 잘못되었다.

          우리는 빈곤에 대해 설명할 필요가 없다. 출발점에서는 모든 사람이 다 빈곤했기 때문이다. 빈곤은 사람이 부를 창출할 때까지 지니고 있는 것이다. 가장 부유한 국가들에서조차 선조들의 삶은 끔찍했었다는 점을 우리는 쉽게 잊는다. 프랑스 같은 나라에서 일반적으로 받아들이는 빈곤의 정의는 아주 간단했다. 다음 날에도 목숨을 부지할 수 있는 빵을 살 여유가 있다면 빈곤하지 않은 것이었다. 어려운 시절에는 넝마를 걸치고 먹을 것을 구걸하는 빈곤한 사람들이 도시에 넘쳐났다.

평상시에도 여유는 거의 없었다. 프랑스 경제사학자인 페르낭 브로텔은18세기 이전 평범한 유럽인들이 죽은 후에 작성한 재산목록들이 “거의 하나같이 빈곤이 보편적이었음을 입증”하는 자료임을 알게 되었다.

다음은 한 노인이 평생을 일하다 죽은 후 남신 전 재산이 어떠했는지를 보여준다. “낡은 옷가지 두서넛, 등받이 없는 의자 하나, 탁자 하나, 긴 의자 하나, 침대로 사용하는 널빤지들, 이불 대용의 밀짚을 채운 자루들, 16세기에서 18세기에 걸쳐 브르고뉴에서 나온 공식 보고서에는 ‘돼지들 옆에서 칸막이만 한 채’ 살며 ‘침대나 가구 하나 없이 … [밀짚 위에서 자는]사람들 이야기’가 넘쳐난다.”

1564년 아드리아해 연안의 항구도시 페스카라를 조사한 결과 요새 하나에 수비대가 주둔해 있던 이곳은 유별나게 가난한 마을은 아니었는데도 주민의 4분의 3이 임시변통한 거주지에서 살았다.

부유한 도시 제노아의 가난한 사람들은 겨울마다 스스로 갤리선의 노예로 나섰다. 파리에서 극빈자들은 짝을 지어 쇠사슬에 묶인 채 하수구를 청소하는 노역을 해야 했다. 

영국에서 가난한 사람들은 구호물자를 받기 위해서는 구빈원에서 일을 해야 했다. 그들은 거의 무보수로 그곳에서 장시간 일했다. 어떤 사람들은 비료로 사용하기 위해 개, 말, 소의 뼈를 부수라는 지시를 받았다. 그 일은1845년 감사에서 구빈원의 허기진 구호 대상자들이 골수를 빨아먹으려고 썩은 뼈를 두고 싸운 일이 밝혀질 때까지 계속됐다.

약간의 기복은 있었지만 인류는 19세기 초까지 경제 발전을 거의 경험하지 못했다. 경제학자 앵거스 매디슨 Angus Maddison이 대략 분석한 바에 따르면 1인당 GDP, 즉 1인당 생산한 상품과 용역의 가치는 서기 1년과1820년 사이 겨우 50% 증가했다. 사람들이 한평생 조금이라도 재산이 늘어나는 것을 경험하기에는 충분하지 않았던 것이다.

유럽은 다른 대륙보다는 약간 더 혜택을 받았으나 1820년 서유럽에서 가장 부유한 국가들의 1인당 GDP는 약 1,500~2,000달러(구매력에 따라  1990년 달러 기준)였다.

요즘의 모잠비크와 파키스탄의 소득보다도 낮다. 모든 소득을 정확히 동등하게 분배(두말할 것 없이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했다고 가정해도 모든 사람이 매우 궁핍하게 살았다는 의미이다. 평균적인 세계 시민들은 오늘날 아이티와 라이벨아, 짐바브웨의 보통 사람들이 빈곤하게 사는 것과 비슷한 정도로 비참한 가난 속에서 살았다.

19세기 초 가장 부유한 국가들에서조차 빈곤율은 오늘날 가장 가난한 국가들의 빈곤율보다 높았다. 미국과 영국, 프랑스에서 국민의 40~50% 가량은 요즘 우리가 극심한 빈곤이라고 부르는 수준의 빈곤을 겪었다.오늘날에는 사하라사막 이남 아프리카에서나 볼 수 있는 비율이다.

스칸디나비아와 오스트리아-헝가리, 독일, 스페인에서는 약 60~70%가 극심하게 가난했다. 노숙은 일반적인 현상이었다. 유럽과 미국 인구의10~20%는 공식적으로 구호 대상자 및 부랑자로 분류됐다.

그때까지 주류 경제학자였던 중상주의는 빈곤이 필요한 덕목이라고 가르쳤다. 빈곤은 사람들이 열심히 일하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여겼으며 낮은 임금만이 생산비를 줄일 수 있어 국각가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당시의 많은 사상가들에 따르면 가난한 사람들은 임금을 더 받으면 일을 그만두고 결국 맥줏집으로 간다는 것이었다.

중상주의자들에게 최대의 적인 스코틀랜드 경제학자 애덤 스미스는 이것은 잘못된 생각이며 사실은 임금을 더 많이 주면 사람들에게 더 많은 일을 시킬 수 있으며 “구성원의 절대 다수가 빈곤하고 비참한 사회는 절대로 번영하고 행복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스미스와 다른 계몽주의자들의 사상은 열심히 노동하는 빈곤층을 점점 더 존중하는 쪽으로 발전했다.

그 무렵 영국에서 시작한 산업혁명이 유럽에서도 일어났다. 경제에 대한 정부 통제가 줄어든 영국의 엘리트들은 다른 데에서 그랬던 것과 달리 새로운 기술에 대해 저항하려고 하지 않았다. 과학적 발견에 대한 실험과 기술적 운용에 새로이 눈뜨면서 천 년 동안 거의 똑같은 상태에 머물렀던 생산방식을 개선했다. 방적과 방직을 기계화하고 고정식 증기기관 덕에 물레방아가 없는 도시들에서도 동력 생산이 가능해졌다. 혁신은 전례 없는 생산력 증가를 가져왔으며 노동자당 생산 가치가 증가하고 소득도 늘어났다.

1820년과 1850년 사이, 인구가 3분의 1만큼 늘어났는데 노동자들의 실질소득은 거의 100%가 높다. 이전의 흐름이 계속됐다면 보통 사람이 소득을 배로 올리는데 2,000년이 걸렸겠지만 영국인들은 겨우 30년 동안에 이를 달성했다

카를 마르크스는 자본주의가 부자들은 더 부유하게 만들고 가난한 사람들은 더 가난하게 만들 것이라고 생각했다. 자유시장에서 누군가 얻게 되면 다른 누군가는 잃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중산층은 무산계급이 될 것이며 무산계급은 굶주릴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마르크스가 사망했던1883년의 평균적인 영국인들은 마르크스가 태어났던 1818년보다 세 배 더 부유했다. 1900년 영국의 극빈층은 10%가량으로, 이미 4분의 3이 줄어들었다. 인류는 그와 같은 경험을 이전에 한 번도 겪어보지 못했다.

수천 년 동안 어떤 나라도 1인당 소득이 지속적인 성장을 경험하지 못했던 시기를 지나, 서양은 1820년부터 1870년까지 매년 1인당 1% 이상 늘어나기 시작했으며 1870년부터 1913년까지는 그 비율이 1.6%로 늘어났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다시금 속도가 빨라졌다. 1820년대 초 서유럽과 북미에서 극심한 빈곤을 겪는 인구는 약 10~20%로 줄었다. 우리가 더 나은 기술로, 더 영리하게 일했다는 사실 역시 노동시간을 줄일 수 있게 했다

1860년 이후 미국인의 주당 평균 노동시간은 25시간이 줄었다. 여기에 보태야 할 사실은 사람들이 일을 시작하는 나이가 늦어졌으며, 일찍 은퇴를 하고, 은퇴 후에 더 오래 산다는 점이다. 우리의 여가 시간을 평균임금으로 계산하면 1인당 GDP는 120%가량 올라갈 것이다.

이것이 유엔개발계획이 인상적으로 묘사한 바 있는, 궁핍과 빈곤으로부터 인류가 진보한 첫 번째 대상승Great Accent이었다. 대상승은 극심한 가난이 대부분의 전 서유럽 국가에서 퇴출되었을 때인 1950년대에 거의 완료되었다. 이때, 일본과 한국, 타이완, 홍콩, 싱가포르 같은 나라들이 세계경제에 편입되고 ‘개발도상국’도 개발이 가능하다는 것을 입증한 동아시아에서 두 번째 대상승이 시작됐다.

그리고 이는 인구 대국 투톱인 중국과 인도가 각각 1979년과 1991년 자국의 경제 개발을 결정하면서 가속도가 붙었다. 아시아 경제의 진보는 유례없는 일이었다. 1950년 이래 인도의 1인당 GDP는 다섯 배, 일본은 열한 배, 중국은 거의 스무 배가 증가했다.

이것은 세계가 예상했던 바가 아니었다.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스웨덴의 작가 라세 베리Lasse Berg와 사진작사 스티그 칼손 Stig Karlsson은 아시아 몇 개국을 방문해 참상을 기록하며 곧 닥칠 재앙에 대해 경고했다.

그들은 과밀 인구와 끝없는 전쟁과 기아를 목격할 것이라고 예측했던 전문가들이 쓴 희망 없는 대륙에 대한 글을 그전에 읽었다. 그들은 당시 아시아 연구의 권위자였던 경제학자 군나르 뮈르달Gunnar Myrdal로부터 중국은 지나치게 혼란스러워 기능을 하지 못하고 말레이시아는 인종 간 분쟁이 너무 많으며 한국인들은 종교 때문에 직업윤리가 없다고 배웠다.베리와 칼손은 그들이 예상하고 있었던 것을 보았고, 최악은 아직 오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최후의 심판일은 다가오고 있다. 이쪽으로든 저쪽으로든”

그러나 1990년대에 그들은 똑같은 장소와 마을에 돌아가 희망의 대륙을 발견했다. “내가 예상했던 상태가 아니었다.”고 베리는 썼다.

내가 왔었던 아시아는 어려움을 헤쳐나갔다. 더 좋은 옷, 더 많은 식량, 나아진 치안 상태,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런 변혁은 사람들의 마음속으로부터 왔다. 빈곤을 자연의 섭리(“부모들이 빈곤했고, 내가 빈곤하고, 내 아이들이 빈곤할 것이다. 예전에도 항상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것”)로 여겼던 곳에서 이제는 빈곤한 사람들 스스로 빈곤은 도가 지나치며 불공정하며 참을 수 없다고 여기고 있다. 인도, 중국, 일본,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한국 등등 나라마다 똑같다. 빈곤은 감소하고 기대수명, 개방의 폭, 자유와 지식은 급속도로 증가했다. 모든 것이 내가 가능하리라 기대했던 수준보다 훨씬 좋아졌다.

인도에서 그들은 몹시 가난한 마을들에서도 더 이상 분뇨 냄새가 나지 않고, 진흙 움막집이 내부의 열을 보존하고 밖의 곤충을 막을 수 있는 벽돌집으로 대체되기 시작한 것을 발견했다. 집에는 전깃줄이 들어가 있고TV가 갖춰져 있었다. 그들이 젊은 인도인들에게 지난번에 방문했을 때의 모습을 보여주자 그 젊은이들은 그게 똑같은 장소라는 것을 믿으려고 하지 않았다. 정말로 여기가 이렇게도 형편없을 수 있을까? 베리가 2010년 다시 돌아왔을 때 변화는 더욱더 진행됐다. 모터사이클들이 있고 큰 시장들이 생기고 마을 사람들은 하나같이 휴대전화를 들고 다녔다. 

이제는 아주 가난한 사람들도 창문에 방법창살을 덧댄 벽돌집에서 살고 있다. 건성으로 살펴보는 사람들은 이제 바로 범죄가 발생하고 있다는 의미라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베리는 그것이 가난한 사람들도 이제는 훔쳐갈 만한 것을 소유하고 있다는 뜻이라고 지적한다.

아시아 개발의 열쇠는 세계경제로의 편입이었다. 근년간 일어난 수송 및 통신기술 향상과 무역 및 투자에 대한 개방 확대로 저소득 및 중간소득 국가들이 번영할 수 있었다. 빈곤국들조차 경제를 개방하고 의류와 장난감, 전자제품 같은 단순하지만 노동집약적인 상품을 생산함으로써 자유무역 세계에서 틈새시장을 찾을 수 있었다. 이로 인해 숙련된 기술로 생산성을 끊임없이 향상시켜 그 나라에서 기술집약적인 상품을 생산할 수 있는 더 나은 자격을 갖추고, 마침내는 금융과 법률, PR, 연구 및 교육 등의 지식집약적인 상품을 생산할 만큼 발전했다. 이는 결국 다른 가난한 나라들도 이전의 노동집약적인 틈새시장에 들어 설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이런 이유로 동아시아 경제는 거위 무리로 비유된다. 무리 가운데 각각 다른 위치에 선 각 나라들은 모두 더 나은 위치를 찾아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아갔다.

어느 곳보다 중국에 이와 같은 현상이 대대적으로 나타났다. 중국은 3대가 저녁 식탁에 앉으면 기아와 먹고살기에 급급한 농사에서부터 컴퓨터 프로그래밍과 화장품 제조까지, 가난뱅이에서 부자가 되기까지의 온갖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나라이다. 1980년대 초 중국 남동부 광둥성의 광저우시에는 10층 이상의 건물이 두 동 있었다. 이곳은 극빈국인 중국에서도 개발을 위한 자본도, 자원도 없는 더욱 빈곤한 성 중 하나였다.그러나 농민들과 마을 사람들은 소규모 자영업을 시작해 생산량을 늘려갔다. 우리가 샤오강 농민들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 그것들은 종종 공식적인 허가를 받지 않고 시작한 일이었지만, 지도부를 고무해 생각을 바꾸도록 했다.

최악의 빈곤에서 국가를 구해내려고 노력하던 중국 공산당은 아시아의’호랑이’인 한국과 타이완, 홍콩, 싱가포르 경제에서는 물론, 자국에서 이루어진 개인 농장과 향진기업(소규모 농촌기업)의 실험 사례에서도 배웠다. 그리하여 중국 공산당은 1980년부터 광둥에 ‘경제특구’를 허가하고 계획 경제의 통제에서 제외했다. 생산은 대체로 시장원리에 기반을 두고, 외국인의 투자와 기술은 기꺼이 받아들이고, 사람들은 국제무역에 종사할 수 있었다. 그곳의 기업은 홍콩과 타이완의 자본을 결합하고 북구 지역의 성에서 온 노동자를 받아들였으며 생산 제품은 서구 시장에 판매했다.

더 높은 임금은 노동자를 새로운 산업도시로 이주하도록 부추겼지만 이것은 새로운 문제를 낳았다. 두 명의 지역 노동자 대표는 내게 이런 중국 속담을 들려줬다. “집에 가면 만사가 편하고 집 떠나면 만사가 고생이다.”공식적인 재산권이 없다는 것은 이주민이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기 전에 땅을 팔 수 없으며, 고향으로 돌아가면 지방 당국이 그들의 땅을 수용한 경우가 흔했다는 의미이다.

중국에 이어 또 다른 대국인 인도가 따랐다. 내가 만난 인도 경제학자 파르트 샤Parth Shah는 인도는 타이완과 한국의 사례를 학습했지만 당연히 이웃한 큰 나라 중국에서도 배웠다고 말한다. “실제로 우리는 그들이 자신들의 변화 모델을 설정하고, 뛰어든 일에서 성공을 거두는 것을 보았다. 인도가 그 교훈을 배울 차례였다.”

빚더미로 부양했던 경기가 붕괴하자 3주 분의 수입 물품 대금이나 겨우 충당할 수 있을 정도로 외환 보유고가 줄어들었던 1991년의 인도에서 이 사실은 매우 중요했다. 이 위기로 인해 재무장관 만모한싱 Manmohan Singh은 의회에 출석해 19세기 낭만주의자 빅토르 위고의 말을 인용했다. “때가 왔다는 생각보다 더 강력한 것은 없습니다.” 그 생각이란, 1947년 독립한 이래 인도를 빈곤에서 헤어나지 못하게 했던 보호주의와 계획경제를 해체하는 것이었다. 면허 요건을 철폐하고 관세장벽을 낮추자 인도인이 창업을 하고 오래된 독점기업들과 경쟁하는 데 훨씬 자유로워졌다.

‘힌두 성장률Hindu rate growth’로 알려졌던, 인구 증가율보다도 속도가 느린 성장률은 옛이야기가 됐다. 개혁 이후 평균 소득은 연7.5%씩 늘었다.이는 10년 사이에 두 배가 된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변화는 인도의 카스트제도에서 가장 낮은 계급인 달리트들 가운데에서도 볼 수 있다. 인구의 거의 4분의 1을 차지하는 달리트들은 교육도 받을 수 없으며 화장실 청소, 동물의 가죽을 벗기고 그슬리는 일, 장례를 치르는 일 등 가장 힘들고 더러운 일에 종사했다. 이 떄문에 불길한 것과 병균에 노출된 달리트에게 다른 사람들이 가까이 가는 것조차 금기가 되어 그들은 ‘불가촉천민’으로 알려지게 됐다. 그들은 빈민가에서만 거주할 수 있고, 사원에는 들어갈 수조차 없기에 밖에서 기도해야 했다.

그런데 도시화와 자유화에는 한 가지 이점이 있다. 시장은 사람들이 어느 동네에서 왔는지 또는 가문의 내력이 어떠한지에 대한 것보다는 사라들이 일을 할 수 있는지 그리고 얼마에 일을 해줄 수 있는지에 더 신경을 쓴다는 것이다. 사업이 경쟁 상태에 놓이게 되자 상위 계급이라고 호의를 베풀어 고용하고 유능한 노동자를 달리트라는 이유만으로 내치게 되면 비용이 많이 들었다.

인도의 자료를 보면 1993~94년과 2011~12년 사이 빈곤율은 거의 24%떨어졌지만 달리트의 빈곤율은 31% 이상으로 훨씬 빠르게 감소했다.인도의 가장 큰 주인 우타르 프라데시주 2개 구의 좀더 상세한1990~2008년 자료를 보면 선풍기(전기가 공급 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달리트 가구의 비율은 3%에서 49%로 늘었고, 벽돌집에 사는 비율은 평균 28%에서 80%로 증가했다.

달리트 계급의 물질적 개선은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사회적 권한 부여와 함께 이루어졌다. 상위 카스트의 결혼식에서 분리해서 앉는 관습은75%에서 13%로 떨어졌고 달리트 가구의 음식과 물을 받아들이는 달리트가 아닌 사람의 비율은 3%에서 60%로 늘었다. 현재 달리트 인도상공회의소 고문인 찬드라 반 프라사드 Chadra Bhan Prasad는 한 때 카스트제도와 싸우기 위해 인도 마오쩌둥주의자 반군에 가담했으나 이제는”자본주의가 카스트제도를 훨씬 빠르게 변화시키고 있다.”고 생각한다.

자존심과 편견에 미치는 빈곤의 영향은 대단히 중요하다. 빈곤은 물질적인 조건일 뿐만 아니라 “상실, 슬픔, 고통, 근심, 집착, 광기, 좌절, 분노, 소외, 굴욕, 수치, 고독, 억압, 불안, 그리고 공포’로 이어지는 심리적인 조건이기 때문이다.

세계은행은 60개국 이상의 가난한 남녀 6만 명과의 인터뷰를 통해 연구한 빈곤 사례를 기록으로 남겼다. 예상대로 가난한 사람들은 식량과 의복, 주거지의 부족에 대해 말했지만 부자나 정부가 저지르는 모욕적인 대우,부패, 범죄, 폭력과 일반적인 불안감도 이야기했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감 부족으로 마을을 거의 벗어나지 않고, 때로는 집 안에 종일 틀어박혀 있다고 말했다.

중국과 인도는 빈곤을 퇴치 중인 대국이지만, 세계화 시대에서 계속 전진하고 있는 대표적인 나라이기도 하다. 1960년대와 1990년대 말 사이 부유한 국가들은 여전히 평균적으로 가난한 국가들보다 빠르게 성장했다.개발도상국의 30%만이 미국보다 빠르게 성장했다. 1997년 당시 세계은행의 수석 경제학자였던 랜트 프리쳇Lant Pritchett은 ‘분기, 중요한 순간 Divergence, big time(하나는 부자의 길로 하나는 빈곤의 길로 갈라지는, 다시는 돌아와 만난 수 없는 매우 중요한 분기라는 의미)’이라는 명료한 제목의 논문을 발표했다.

그는 생활수준의 분기는 “현대 경제사에서 두드러진 모습”이라며 빈곤한 국가들이 부유한 국가들을 급속히 따라 잡았던 시기에 “역사적으로 드물었다.”고 썼다.

그런데 그 후 정말로 그런 일이 일어났다. 2000년과 2011년 사이 개발도상국의 90%가 미국보다 빠르게 성장했다. 그들 국가들은 매년 평균3%씩 성장을 이루었다. 바로 그 10년 동안 세계의 저소득 및 중간소득 국가들의 1인당 소득은 두 배가 됐다.

일부 통계학자들에 따르면 2012년 3월 28은 인류에게 의미가 있는 큰 날이었다. 그날은 개발도상국들이 세계 GDP의 절반 이상을 책임지는 현대 역사상 첫날이었다. 이는 10년 전의 38%에서 높아진 것이다. 이러한 국가 간 격차 축소는 이해할 만하다. 사람들이 지식과 기술, 자본에 자유롭게 접근하면 다른 곳의 사람들만큼 많이 생산 하지 못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세계 인구의 5분의 1을 보유한 나라는 세계 부의 5분의 1가량을 생산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수 세기 동안 그러지 못했다. 세계의 많은 지역들이 억압과 식민주의, 보호주의에 의해 견제당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일들은 이제 줄어들었다. 그리고 교통과 통신기술의 혁명이 일어나 전 지구적 분업이 용이해지고 다른 국가들이 수세대에 걸쳐 막대한 개발 비용을 들인 기술과 지식에 쉽게 접근할 수 있다.

이는 세계가 전에 경함한 바 없었던 엄청난 빈곤 감소로 이어졌다.세계은행은 2005년 가격으로 하루 1.90달러 이상을 소비할 수 없는 사람을 ‘극심한 빈곤’속에 산다고 정의한다. 이 숫자를 인프레이션과 지역 구매력에 따라 조정하면 정확히 1981년의 브라질이나 2015년의 부르키나파소가 똑같은 생활수준을 나타낸다. 이러한 기아선은 15개 최극빈 개발도상국들 각국의 평균 기아선이므로 영국이나 미국에서 듣는 기아선보다 훨씬 낮다.

이 분야에 대해서는 1981년까지 거슬러올라가 살펴볼 수 있는 상세한 통계자료가 있다. 거의 모든 저소득 및 중간소득 국가들의 전국적인 대표 가구들을 대상으로 1,000번 이상 정기적으로 업데이트한 설문 조사에 바탕을 둔 통계이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1981년 개발도상국 인구의 54%가 극심한 가난 속에 살았다. 이는 이미 역사적인 성취를 이룬 것이다. 장기간에 걸쳐 빈곤을 측정하려는 야심 찬 시도에 따르면, 1985년 구매력에 맞게 조정한 최극빈 척도인 하루 2달러의 기준선으로 볼 때1820년 세계 인구의 94%가, 1910년에 82%가, 1950년에는 72%가 극도의 가난속에 살았다.

하지만 최근 수십 년 동안 상황이 실제로 바뀌었다. 1981년과 2015년 사이 극심한 빈곤으로 시달리고 있는 저소득 및 중간소득 국가들의 인구는54%에서 20%로 줄었다. 빈곤한 사람들의 대부분은 아시아에 살았다. 아시아는 우리가 가장 큰 진보를 목격한 곳이기도 하다. 남아시아에서 극심한 빈곤은 58%에서 14%로 줄었고 놀랍게도 동아시아와 태평양 지역 국가에서는 81%에서 4%로 떨어졌다.

2000년 유엔의 새천년정상회의에서 세계 회원국들은 1990년의 극빈자 수를 2015년까지 절반으로 줄이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 목표는 목표 시한보다 5년 일찍 달성했다. 세계 인구가 1990년과 2015년 사이 20억 명 이상 늘어났음에도 불구하고 극심한 빈곤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수는12억 5,000만 명 이상 줄었다. 극빈자들이 25년여 동안 매년 5,000만 명 이상, 하루에 거의 13만 8,000명씩 줄어든 셈이다.

이는 과거 역사와의 결별을 의미한다. 인구가 늘어났는데도 가난한 사람의 수가 증가하지 않은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이 덕분에 현재 극빈자의 수는1820년보다 약간 줄었다. 그때는 10억 명 가량이었는데 오늘날은 7억 명이다. 이것이 진보가 아닌 것처럼 들린다면, 1820년에는 극심한 빈곤 속에서 살지 않은 사람이 겨우 6,000만 명 안팎이었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오늘날은 65억 명 이상이 극심한 빈곤 속에서 살지 않는다. 그러므로 빈곤 속에서 살아야 할 위험이 94%에서 11% 이하로 줄어든 셈이다.

빈곤을 극복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많은 이론이 있고 세계 기구들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유리한’ 성장을 이루는 방법을 찾기 위해 씨름하고 있다. 하지만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성장을 이루는 가장 좋은 방법은 성장률을 높이고 고도성장을 유지하는 것이다. 40년간 118개국을 대상으로 진행한 어떤 연구는 사회극빈자들의 소득 증가가 거의 모두 소득분배의 변화보다는 해당 국가들의 평균 성장이 이끌어낸 결과였음을 보여준다.

하위소득계층 40%의 국민소득 증가분 가운데 72%가 평균소득 증가에 기인한다. 하위소득 계층 20%에서는 소득 증가분의 62%가 이 덕분이다.따라서 생산된 부의 양이 부의 분배보다 더 튼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연구 결과와 부자들이 더 부유해지지만 하면 그들의 식탁에서 약간의 부스러기가 극빈자들에게 떨어질 것이라는 ‘낙수효과trickledown’이론 간 차이를 이해하는 것은 중요하다. 낙수 효과는 지금까지 일어나지 않았다. 가난한 사람들은 현대적인 생산 유형과 사업에 참여해서 스스로 부자가 되는 새로운 기회를 이용하고 있는 것이지 다른 사람이 그렇게 해주기를 기다리는 게 아니다.

따라서 우리가 ‘공동번영 shared prosperity’에 관심을 갖는다면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 둘 다 있다. 전반적인 경제성장을 촉진하는 기구와 정책은 평균적으로 빈곤한 사람들의 소득을 똑같은 비율로 높여 ‘공동 번영’을 촉진한다는 것이다. 나쁜 소식은 거시경제 정책을 선택할 때, 전반적인 경제성장에 미치는 직접적인 영향을 통해서 말고는 어떤 정책들이 특별히 ‘가난한 사람들에게 유리’하거나 ‘공동 번영’을 촉진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확실한 증거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개발도상국들의 급속한 성장에 따른 결과 중 하나는 역사적으로 유일하게 세계적인 불평등 현상이 감소한 것이다. 서구 세계가 성장하기 시작한1820년 이후 국가 간 불평등이 확대됐다. 하지만 빈곤한 국가들이 현재 부유한 국가들보다 더 빨리 성장하고 있기 때문에, 현대경제사상 처음으로 수렵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피터슨 연구소Peterson Institute는 국가 간, 그리고 국가 내부의 불평등을 조사해 전 세계인 사이의 불평등을 측정하려는 연구를 하고 있다. 그들이 내린 결론에 따르면 세계 소득격차는 금세기로 넘어오면서 상당히 감소하기 시작했다. 

0은 모든 사람이 똑같은 부를 가졌음을 뜻하고 1은 한 사람이 부를 모두 가졌음을 뜻하는 척도인 지니계수(대표적 소득분배지표 소득분배의 불평등 정도를 나타내는 수치)는 2003년 0.69에서 2013년 0.65로 떨어졌다.이는 여전히 극심한 불평등을 나타내는 수치로 아마도 지상에서 가장 불평등한 나라일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국내 불평등 수치와 같다. 그러나 향후 20년 동안의 경제 전망이 진실에 가깝다면 지니계수는 2035년0.61로 훨씬 더 떨어지게 된다.

우리는 괄목할 만한 시대에 살고 있다. 이전에는 한 번도 세계가 이러한 극적인 빈곤 감소를 목격하지 못했다. 어떻게 생각하면 세계화는 산업혁명보다 더 중요하다. 서구 세계가 1800년경 산업화를 시작했을 때 세계 인구는 2억 명이었고, 평균소득이 두 배가 되는 데 50년이 걸렸다. 중국과 인도는 열 배 많은 인구로 똑같은 성과를 이루는 데 다섯 배 빨랐다.따라서 그런 면에서 보면 세계화가 산업화보다 50배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다.

글로벌 중산층의 출현과 함께 등장한 이 거대한 변화는 소비 패턴만 바꾸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은 우리의 생활양식 그리고 우리의 삶과 다른 사람에 대한 태도도 바꾸게 될 것이다. 잃어버리면 안 되는 귀중한 것, 즉 무지갯빛 창창한 앞날이 있는 사람은 일시적인 이익 때문에 모든 것을 걸고 도박을 하려고 하지 않는다. 또한 미래를 믿는 사람들은 미래에 더 많이 투자한다. 

– Progress ,진보, 우리가 미래를 기대하는 10가지 이유 , 요한 노르베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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