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상인들이 개발한 ‘송도부기’가 세계를 지배하다.

개성상인 중에는 고려의 귀족, 권문세가를 비롯하여 지식인이 많았다. 고려 건국을 전후한 시기부터 이들은 중국을 오가며 국제무역을 하였다. 대형 선단을 거느리고 멀리 중국 동남부의 복건, 광동 지역으로까지 나가는 이들이 있었다. 그 중에서도 복건성의 천주나 강절 지역의 경원(영파), 항주 등지는 고려의 개성상인들이 수시로 드나들던 곳이었다. 이들은 휘하에 많은 상인을 거느리고 있었으며, 개성상인 중에는 거상이 많았다. 이들은 실제로 무역 현장의 실무를 맡은 사람들을 수하에 두고 무역에 관한 업무를 총괄하였다. 그 과정에서 거래 장부의 정리와 회계업무는 필수적이었다. 송도상인들은 일찍이 회계장부를 정리하는 기술을 개발하였다.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송상들이 개발한 회계기법을 따라 썼으며, 그것을 소위 사개송도치부법이라고 한다. 치부법이란 ‘장부를 다루는 법’을 말한다. 다른 말로 사대다리치부 또는 사개문서라고도 불렀는데, 개성상인들이 개발해서 쓴 장부 기법이므로 이것을 쉽게 개성부기하고도 하였다. 이 개성부기가 바로 현재 널리 쓰이고 있는 부기의 기초가 되었다.

다시 말해 개성부기는 현재 모든 분야에서 쓰이는 부기의 근간이 되었으니 송도상인들은 현대 부기의 개발자이다. 부기를 영어로 북 키핑(Book-keeping)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중세시대 유럽 상인들이 개성부기를 받아들여 사용하면서 ‘부기’를 영어 소릿값으로 베껴낸 말이다.

사개송도치부법에서 말하는 사개는 상업에서 중요한 근간이 되는 네 가지 요소를 의미한다. 본래 사개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먼저 개는 물건의 낱개를 세는데 쓰는 계량명사이다. 즉 4개를 의미한다. 그리고 두 번째로는 ‘상자나 가재도구의 네 귀퉁이를 요철모양으로 만들어서 모자라거나 넘치지 않고 꼭 맞춰서 들어맞게 된 부분’을 뜻한다. 그래서 전후좌우 아귀가 서로 꼭 맞게 짜 맞추는 것을 “사개를 물린다.”고 말한다. 그런데 송도사개치부법에서 쓰인 ‘사개’는 위의 두 가지 의미를 모두 포괄한다. 다만 여기서 말하는 네 개란 상업에서 자산, 부채, 수익(이익), 비용(손실)의 네 가지 요소를 가리킨다. 개성상인들은 자산계정의 차변원장(좌변)을 봉차장, 부채계정인 대변원장(우변)을 급차장이라고 구분하여 불렀다. 그리고 이들 사이에서 움직이는 수익과 비용을 함께 기록하는 방식을 택한 부기법을 개발하였는데, 바로 이것이 오늘날 부기의 원형이 된 것이다.

송도치부법 장부에서 자산 계정을 일차질이라고 하며, 부채 및 자본 계정은 급차질이라고 한다. 급차질은 빌려와서 보충한 것이니 부채이다. 송도상인들은 수익계정을 이익질, 비용 계정을 소비질이라고 정의하였다. 장사에서 돈의 흐름은 이들 네가지 즉, 사개의 들고 남이 서로 딱 맞게 되어 있다는 것이 송도부기의 기본원리, 이 네가지 장부 기재 요소는 회계관리에서 언제나 서로 꼭꼭 맞게 되어 있으며 또한 들어맞게 기록해야 하는 것이란 의미가 ‘사개송도치부법’이란 이름에 내재되어 있다.

결국 장사란 물건이 들고나며 이익을 떨어트리고 돌아다니는 것으로, 사개의 기본요소안에서 움직이는 숫자 처리 기술이 부기라는 것을 명확히 이해하고, 송도상인들은 자신들의 필요에 맞게 부기를 최대한 적절히 활용한 것이다.

이것을 현대 부기로 설명하면 쉽게 이해될 것이다. 상업부기에서 “자본=자산-부채”라고 한다. 이것이 소위 ‘자본등식’이다. 또 자신이 갖고 있는 자본에 다른 사람으로 부터 빌려온 재화와 용역을 더한 것이 자산이다. 이것을 간단한 등식으로 표시할 수는 없을까? 앞의 등식에서 오른편의  ‘부채’를 좌변으로 넘기면 ‘자산=부채+자본’이 되어 간단히 설명할 수 있다. 이것을 대차대조표 공식이라고도 한다.

이런 원리를 송도상인들은 일찍부터 잘 알고 있었고, 거래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이런 원리에 따라 나누어 기록하고 쉽게 알 수 있게끔 정리하였다. 용역(노동력)을 제공하면, 그것을 제공받은 사람으로부터 재화를 받게 되고, 물건을 팔거나 사면 그로부터 재화가 이동한다. 쌍방의 거래이므로 거기에는 손익이 발생한다. 즉 그것을 차변(수익)과 대변(지출)으로 나누어 기록한다. 어떤 것이든 거래에는 수익(수입)과 지출(비용)이 동시에 발생한다. 다시 말해 모든 거래는 반드시 차변 요소와 대변요소가 동시에 발생하는 것이다. 이것을 거래의 이중성이라고 한다. 이것이 복식부기의 기본원리인데, 여기에는 모든 계정계좌의 차변 합계액과 대변 합계액은 반드시 일치한다는 ‘대차평균의 원리’개념이 들어 있다. 송도부기를 개발해서 쓴 개성상인들은 이러한 원리를 너무도 잘 이해하고 있었다.

고려의 개성부기는 이탈리아 부기보다 2백년 가량 앞서 있었고, 서양의 복식부기 기원을 이탈리아의 루카 파치올리(Lucas Pacioli)가 베니스에서 출간한 ‘산수 기하 비례 및 비율총람’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그보다 훨씬 이전에 이땅에서 바다 건너 중국으로, 그리고 거기서 아랍, 이집트, 요르단, 시리아 그리고 지중해를 따라 모로코를 거쳐 이탈리아로 송도부기가 건너갔다. 중국 명주와 천주로 나가서 살며 장사를 하던 고려의 개성상인들을 통해 개성부기가 십자군전쟁 이후 서양으로 넘어갔다. 그것이 모로코를 거쳐 이탈리아에 전해진 것인데, 그 후 이런 장부 기재법은 유럽 전역에 전파되었다.

이런 사개송도치부법은 개성과 중국의 해안지대 그리고 경원, 천주, 광주와 같은 국제적인 교역항을 무대로 뛰던 아랍 상인들의 손을 타고 유럽으로 전해졌다. 송과 원의 지배하에 있던 중세 시대에 아랍과 유럽에 전해졌으며, 역시 아랍인들을 통해 유럽에 전해진 종이와 제지술에 힘입어 개성상인의 부기는 지중해 연안의 유럽 상인들을 크게 변화시켰다.

그러나 개성상인들이 송도부기로 거래장부를 간편하게 기록하고 관리하던 시기에 밀라노나 베니스의 상인들은 이런 부기 원리를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다. 13~14세기까지도 서양사회는 종이가 널리 보급되지 않았으며, 일부 상층사회에서 책이나 귀중한 기록물을 남기기 위해 사용되는 것이 고작이었다.

– 신안 보물선의 마지막 대항해, 서동인, 김병근 –

바다를 누빈 중세 최고의 상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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